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은 어디에 있나요 ?

  • AD 소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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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 2010.06.17 15:12
  • 문서주소 - http://yongintv.co.kr/bbs/board.php?bo_table=B03&wr_id=20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지명에 얽힌 역사적 사실과 어원에 대해 알아 보기위해 기자는 사단법인 누리전통문화보존회 연구원과 함께 백암의 지명에 대한 어원에 대해 취재를 해보기로 했다.

  -백암을 배개미로 부르는데 무슨 의미인가요-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드리자면, 우선 추석을 들 수 있습니다.흔히들 추석이라며 한가위라고 하지요. 한가위라고 부르는 것과 배개미라고 부르는 것이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추석의 유래는 신라시대때 가배()에서 “가위” 가 크다는 의미의 한가위가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배개미의 어원 역시 조상들은 토씨말(가림토)과 한자의 유입과정에서 입으로 불리워지며 형성된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가배-가위는 현재 추석을 의미하며, 배관장-백암-배개미(-,-바훼-바위/-지명,자연에 붙는 접미사) 역시 모음 탈락현상에 기인한 것으로 보아집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백암이라는 지명이 기록에 등장하지요 -

 조선시대 영조임금때, 당시의 모든 이야기를 왕명에 의하여 편찬된 서적중 <동국문헌비고>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책을 보면 시골장터에 관련된 내용중 , 배관장 30리(읍치 죽산읍) 3,8일(5일장)개시로 기록되어 있지요. 그때가 서기로 1770년이니까 지금부터 240여년전이 되겠네요.
이후, 57년이 지난 시점에 쓰여진 서유구 선생이 집필한 <임원경제지>라는 책에는 배감장이라는 조금 유사한 지명으로 기록됩니다. 이후 <죽산읍지>에도 배관장이라는 지명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최초에는 배관장이 맞는 것 같습니다.

  -백성들은 왜 ? 백관장을 “배개미”장터에 간다고 불렀을까요-

제 소견으로는 한자식 표기인 배관장(排觀場), 또는 배감장(排甘場)으로 기록되기 이전부터 백성들은 소리나는 대로 한자를 표현한것 같습니다. 더구나 당시의 음운변화가 상당히 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배관장-배감장-배개미장”을 배감 또는 백암이 배개미로 불려지면서 생긴 친숙한 우리말 지명으로 불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백암장은 1.6일로 정착되었나요-

아마도 구백암 지역, 현재는 백암에서 덕평으로 가는 중간쯤, 청정마을(봉의산 밑)을 구백암지역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곳에서 시장이 열렸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시장이 열리는 날짜가 3.8일로 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한 시기 적어도 1827~1850년 사이 현재 삼각주 지역인 모래벌판에 부정기로 시장이 열리면서 자연스럽게 인근지역에는 1.6일로 알려졌지 않나 생각되어집니다.
기록상으로 보면 1894년에 쓰여진 죽산읍지에 백암장의 개시일이 1.6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암의 연혁은-

예, 1914년 일제에 의하여 행정구역이 통폐합의 되면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저 바깥의 4개면(고안,고동,박곡,원일)을 외사면이란 이상한 명칭을 사용했으나, 1996년 용인시 행정구역개편시 현재의 백암의 원 지명으로 환원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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