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평대군(麟坪大君)

  • AD 소연기자
  • 조회 6381
  • 2011.11.0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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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평대군(麟坪大君 1622∼1658)은 인조의 셋째아들이며 효종의 동생으로 이름은 요(㴭), 자는 용함(用涵), 호는 송계(松溪)이다. 인조 7년(1629) 인평대군에 봉해졌다. 병자호란 이후 인조 1십팔년(1640) 볼모로 심양(瀋陽)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온 이후, 효종 2년(1650)부터 네 차례에 걸쳐 사은사(謝恩使-사신)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학문에도 소양이 깊어 제작백가에도 정통하였고, 시.서.화(詩書畵)에도 능하였다. 특히 1645년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따라 들어 왔던 중국인 화가 맹영광과 가깝게 지내기도 하였다. 그 자신의 작품으로 희귀하여 현존하는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의〈산수도〉, 홍성하 소장의 〈노승하관도 老僧遐觀圖〉, 정무묵소장의 〈고백도 古栢圖〉 등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고백도〉는 섬세하고 꼼꼼한 필치로 다루어져 있어, 맹영광의 공필법(工筆法)의 영향을 받아 상통하는 바 크며, 〈산수도〉는 다소 거친 필치등의 절파풍(浙派風) 영향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이외에 《송계집》·《연행록》·《산행록》의 저서를 남겼다. 효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경(忠敬)이다.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인평대군 묘역에는 효종 9년(1658)에 건립된 묘 및 신도비와 효종, 숙종, 영조, 정조 등이 직접 짓고 쓴 치제문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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