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문화재 관리 "절실"

  • AD 소연기자
  • 조회 4690
  • 2010.06.1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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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영 부장]철저한 문화재 관리 '절실'

입력날짜 : 2007. 09.0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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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영 부장(경기도청 주재)
경기도 기념물 제13호인 '남이장군의 묘'를 찾아 용인을 떠나 거리의 교통표지판을 보며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를 찾기 위해 국도를 한참을 가다보니 양로교차로가 눈에 띄웠다.

여기에서 비봉면 방향 좌회전과 화성송탄 우회전 간판이 보여 교통표지판 따라 좌회전을 쭉 하다보니 비봉면이라는 간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비봉면교차로에는 고향의 봄길이라는 표지판만 보일 뿐 남이장군 묘를 가르키는 표지판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도 없었다.

한참을 가다보니 비봉면사무소 좌회전과 남양 수원 우회전이라는 간판만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한테 남이장군의 묘의 위치를 물어도 "글쎄요 모르겠는데요?"라고 말을 할 뿐 아는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은 네비게이션을 부착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처음가는 그 곳을 찾아가는 사람과 외국인을 위해 우리의 표지판은 정확하면서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표지판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도 경기도기념물이라고 버젓이 문화재에 등록만 되어 있을 뿐 표지판 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한참을 헤매다 남이장군의 묘의 표지판은 정작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 면사무소 근처로 들어서자 비봉면 남전리 0,5km이라는 근처에 와서나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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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장군의 묘'

조선 전기의 무신인 남이장군(1441-1468)은 남휘의 손자이며, 권람의 사위로 세조3년(1457) 17세때 무관에 급제하고 세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여러 무관직을 역임하기도 했고, 이시애의 반란때 여진을 토벌한 공으로 26세때 병조판사가 되었으나 역모를 도모한다는 유자광의 무고로 28세때 처형을 당했다.

'남이장군의 묘' 표지판을 찾아 올라가다보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경기도가 문화재로 등록해 관리하고 있는 곳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변에는 널판지 , 페트리트병과 각종 쓰레기와 굴껍질 등이 올라가는 길에 널려 있었고, 입구는 대형버스는 고사하고 봉고차도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길에 잡초가 무성해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문화재로 지정만 해놓고 관리도 하지 않는 당국의 문화재 관리가 문화재 지정으로 재산권침해를 당하면서도 감수하고 있는 인근 주민들에게 무엇을 강요할 것인가?

문화재란 훼손되는 순간 그 가치를 잃는다. 훼손된 문화재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문화재가 훼손되기 전에 관리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적은 예산으로도 얼마든지 관리가 충분하다. 문화재를 관리하고 있는 담당자들의 본연의 임무가 바로 이것이다.

문화재를 관리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혈세로 녹봉을 줄 이유가 없지 않는가.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문화재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철저한 현장점검과 각성이 요구된다.

경기도청/조혜영기자 ab153715@dbstv.co.kr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11-03-30 22:21:06 기자수첩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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