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제 제98호 경기도도당굿은 서울을 비롯한 한강 이북지방과 수원·인천 등지에서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목적으로 매년 혹은 2년이나 그 이상의 해를 걸러 정월초나 봄·가을에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굿을 말한다. 경기도 도당굿은 경기도 일대의 한강 이남지역에 전해져 오는 마을굿으로, 지금은 부천의 장말에서만 완전한 형태의 경기도 도당굿을 볼 수 있다. 경기도 도당굿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마을 동산의 소나무 숲속에 300년이 넘은 도당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신 당가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를 통해 대대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규경(李奎景)의 『五州衍文 長箋散稿』에 보면 [我東鄕俗多虎豹之患, 夜不能出, 小醵錢備牲醴, 祭山君於本里鎭山, 巫覡粉若鼓之以妥之, 名曰都堂祭 : 옛날 우리 나라에는 호랑이나 범에 의한 피해가 많아 밤에는 집 밖으로 출입을 하기 어려웠다. 백성들이 돈을 모아 제물을 마련하여 동리의 진산(鎭山)에 있는 신당(神堂)에서 제(祭)를 올렸는데 무격들이 분으로 단장하고 북을 두드렸는데 이를 도당제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옛날 당신(=基神)굿 즉 각 고을, 주(州), 군(君), 현(縣), 부(府) 등 서울과 시골을 가리지 않고 거주하는 곳(터=基)에 있는 큰 산이나 주산(主山)에 있는 신당(神堂)에서 그 산의 산신(山神)에게 마을의 호환을 피하기를 기원하며 올리는 제(祭)나 굿을 의미하는데 이를 도당제 혹은 도당굿이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의 도당굿은 매년 혹은 몇 년에 한 번씩 온 마을 주민이 대동으로 합심하여 돈을 거두어 무격(巫覡)으로 하여금 도당에 모시는 신에게 마을의 안녕 또는 풍농(豊農), 풍어(豊漁)를 비는 대동굿의 성격을 띠고 있다.
경기도 지방에서 전해지는 도당굿을 보면 그 도당이 처해있는 지리적인 여건에 따라서 모셔지는 신위(神位)가 각기 다르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내륙지방에서는 대개 산치성이나 산제라고 하여서 도당할아버지나 도당할머니가 산신(山神)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경기도의 서해안과 섬 지방의 풍농과 풍어의 성격을 함께 띠고 있는 도당굿도 섬기는 신위(神位)는 용왕(龍王)이나 임경업장군 혹은 바다라는 지역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은 신격(神格)들을 모시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섬 지역인 제부도, 영종도, 떼무리섬, 살섬, 용유도, 덕적도, 등에서도 풍어를 위한 대동굿을 풍어제라고 부르지 않고 도당굿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그 절차나 의례를 보아도 서해안 별신굿으로 나타나는 풍어제와는 다르다. 또한 해안가에 나타나는 각종 도당굿의 주무(主巫)를 보면 강신(降神)을 받은 기능세습무(技能世襲巫)와 단골무들이 공유를 하고 있어서 경기도내의 도당굿에서 보이는 형태의 다양함을 알 수 있다.
도당굿의 순서
경기도 도당굿의 절차를 보면 지역마다 약간씩 그 행위나 절차가 다르게 나타나며 굿을 주관하는 무격에 따라서도 변화가 오는데 일반적인 순서를 보면 굿을 하기 전날 당주(堂主)의 집에서 하는 당주굿을 시작으로 부정청배→부정굿→당맞이(당굿)→돌돌이→장문잡기→시루굿→터벌림→제석청배→제석굿→손굿→군웅굿→당할머니굿→뒷전의 순으로 구성되고 있으며 일반적인 집굿과 같은 경기굿의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당맞이, 돌돌이, 터벌림 등과 같이 집굿에서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고, 집굿에서 보이는 산바라기굿이나 서낭굿이 없는 것이 도당굿의 특징이다.
경기도의 도당굿에서 나타나는 절차와 무음악(巫音樂)의 장단을 보면 당주굿에서는 고사상을 차리는데 고사상은 대청에 소반을 놓고 그 위에 쌀을 가득 담은 말(=斗)을 올려놓은 후 대주의 밥그릇에 쌀을 담아 말 위에 올린다. 그 그릇에다 촛불을 켜고 수저를 꽂은 후 실타래를 걸고 술잔이나 정화수를 떠놓고 돈도 얹어 놓고 축원을 한다. 당주굿에서는 영산회상(靈山會相)이나 염불타령(念佛打令)을 먼저 치고 중모리 장단에 창부가 판패개제의 창으로 성주축원을 하듯 고사소리를 한다.
당맞이를 끝내고 나면 창부가 굿상 앞에 장고를 놓고 앉아서 오른손에는 열채를 들고, 왼손에는 궁채를 들고 오니섭채 장단을 치면서 부정청배(不淨請拜) 무가(巫歌)를 부르는데 무가는 육자배기 토리로 부른다. 요즈음에는 도당굿에서 보편적으로 무격(巫覡)들이 앉은 청배를 하지만 과거에는 산이제 도당굿이라고 하여서 악사 중에서 기능이 뛰어난 산이들이 앉은 부정을 청배하고 난 뒤에 선부정을 쳤다.
부정청배가 끝나고 나면 무당이 치마, 저고리에 맨머리로 굿상 앞에 서서 방울과 부채를 들고 도살풀이 장단에 맞추어서 육자배기 토리로 무가를 부른다. 이때 고인(=樂士)들은 자진굿거리로 삼현(三絃)을 치고 나면 무당이 덩더궁이로 회전무(回轉舞)를 하고 난 후 공수를 준고 수부를 친다.
당(堂)은 산 위에 있는 당집이나 마을에 있는 당집, 혹은 신목 등에서 맞아들이는데 대개는 서낭을 맞아들인다고 칭한다. 이 때 길군악을 치면서 당에 도착하는데 당 주위를 덩더궁이를 치면서 세 바퀴 돈다.
돌돌이는 마을에 있는 경계를 다니면서 모든 부정을 막는 수살(守煞)의 기능을 갖고 있는 의식이다. 기를 앞세우고 군웅할머니(당할머니=군웅굿을 하는 도당굿의 주무가 활옷에 갓을 쓰고 부채를 든다), 창부, 잽이, 무당, 동민들이 따라 가는데 장승 앞에 도착하면 덩더궁이 장단에 맞추어서 장승을 세 바퀴 돌고 장승 앞에 굿상을 차려 놓고 당할머니가 수살굿을 한다. 수살굿이 끝나고 나면 창부가 전복(戰服)에 나무칼을 들고 판패개제로 고사 소리를 한다. 마을에 장승이 여러 곳에 서 있으면 장승 앞에 가서 수살굿을 반복한다.
돌돌이를 끝낸 일행이 당에 도착을 하면 당 앞에 있는 볏섬 위에 당할머니가 올라가서 앉는다. 창부, 잽이, 동민들이 당할머니 앞에 가서 서면 창부가 "명금이하(銘金以下) 대취타(大吹打) 하라"고 명령을 하면 징을 두 번 울리고 난 뒤 취타를 치고, 다시 창부가 "이방(吏方)이요, 호방이요, 병방이요, 급창(及唱)이요"라고 하면 모두 머리를 조아린다. 당할머니가 "이 마을에 광대(廣大)나 고인(鼓人)이 있으면 재주를 보이라"고 하면 창부가 나가서 단가를 부르거나 어름산이(줄광대)가 나와 줄타기를 하든지 버나 등을 돌리며 재주와 재담을 보인다.
장문을 잡고 나면 굿상 앞에 상을 놓은 후 큰 떡시루를 놓고 시루고사상을 차린다. 창부가 두루마기에 갓을 쓰거나 무당이 평복차림으로 장구를 앞에 놓고 앉거나, 비손을 하면서 시루고사상 앞에 앉아서 어니섭채 장단에 맞추어서 육자배기 토리로 청배무가를 부른다. 시루고사가 끝나고 나면 무당이 소지(燒紙)를 올리면서 축원덕담(祝願德談)을 하는데 이때 반주는 없다.
시루고사를 끝내고 나면 바로 터벌림으로 넘어가는 도당이 있고(부천 장말 도당) 제석굿으로 넘어가는 도당이 있다(인천 동막도당). 창부가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꽹과리를 들고 터벌림장단이라고 하는 반설음장단을 치면서 터벌림춤을 춘다. 터벌림은 '터를 밟는다', 혹은 '터를 벌린다'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주민들에 의해서 좁혀진 굿판을 벌려 놓는다는 뜻과, 터를 다져서(地神을 밟는다는 뜻을 갖고 있다)
마을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뜻으로도 나타난다. 터벌림은 도당굿에서만 나타나는 춤으로 화랭이(=창부)의 기능을 펼쳐지는 거리이다.
화랭이의 터벌림이 끝나고 나면 산이가 장고를 치면서 제석청배(帝釋請拜)를 한다. 제석청배는 오니섭채 장단을 치면서 청배무가를 부른다.
청배가 끝나면 제석굿을 하는데 무당이 굿상 앞에서 장삼 안에 관디라고 하는 소매가 색동으로 된 옷을 입고 춤을 추다가 장삼으로 갈아입고 흰 고깔을 쓰고 부채와 방울을 들고 춤을 추는데 일반 굿에서는 왼손에 방울을 잡고 오른손에 부채를 드는데 비해서 도당굿에서는 오른손에 방울을 들고 오른손에 부채를 들고 춤을 춘다.
무당이 부정놀이 장단에 맞추어서 춤을 추다가 조임채와 올림채를 치고 나서 넘김채로 넘긴 후에 겹마치로 넘겨 부정놀이로 마친다. 춤을 마치고 나면 육자배기 토리로 무가를 부르는데 이때는 공수답으로 무가를 부른다. 예전에는 화랭이가 공수답의 뒷 대답을 했다고도 하는데 현재는 그런 형태는 볼 수가 없고 무당과 고인들이 가래조 장단으로 만수받이를 한다.
제석굿을 마치고 나면 손굿을 하게 되는데 도당굿의 손굿은 집굿에서의 손굿과는 그 형태가 다르다. 집굿의 손굿은 무당이 맡아서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만 도당굿에서는 먼저 화랭이가 반설음 춤을 추고 난 뒤 공수답을 하고 나서 [손님 노정기]를 부른다. 손님 노정기는 마마신이 중국 강남서부터 출발을 하여 조선국으로 나오는 과정을 소리를 하게 되는데 방물가(房物歌) 등 화랭이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과정이다. 중모리 장단에 맞추어서 하는 손님 노정기가 끝나고 나면 중중모리, 잦은모리로 장단을 바꾸어 가면서 판패개제로 소리를 한다. 소리의 끝에는 수살맥이라고 하여서 화랭이가 활을 들고 춤을 추며 활 놀이를 하다가 사방에 대고 할을 쏘는 시늉을 하면서 수부를 치고 마친다. 이러한 화랭이의 굿인 손굿은 현재는 화랭이가 재능을 갖고 있는 기능인이 없어서 일반적으로 기능을 세습(世襲) 받은 강신무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손굿이 끝나고 나면 무당이 활옷에 빛갓을 쓰고 손에는 부채와 방울을 들고 도살풀이 장단에 맞추어서 육자배기 소리조로 무가를 부른다. 이때 고인들은 경기 시나위로 반주를 한다. 군웅 상은 굿상 앞에 따로 차리는데 무당은 군웅 상을 싸고돌면서 부정놀이 장단에 맞추어서 춤을 추다가 올림채로 올려 조임채로 조이고 다시 부정놀이 장단에 맞추어서 군웅을 한다.
군웅을 마친 후에는 화랭이가 전복에 갓을 쓰고 꽹과리를 잡거나 부채를 들고 군웅 상을 가운데 두고 반설음 장단에 맞추어서 춤을 추다가 반설음 조임으로 조여 넘김채로 넘겨 덩더궁이와 겹마치로 춤을 춘다. 춤을 춘 다음에는 화랭이는 그 자리에 서 있고 무당은 그 자리에서 활을 들어 땅을 발로 박차면서 활을 쏜 후 공수를 주고 물러난다.
당할머니굿은 안당과 같은 기능을 갖는 거리로 당할머니 상을 따로 차려 놓고 활옷에 빛갓을 쓴 당할머니가 부채와 방울을 들고 굿상 앞에 서서 축원을 한 다음에 도살풀이 장단에 맞추어서 잔작을 하고 나서 굿판에 모여 든 모든 사람들에게 덕담을 하면서 술잔을 내린다.
화랭이가 뒷전을 할 때는 [의딩이]라고 하는 재담꾼으로 변한다. 뒷전은 바지 저고리에 주렁모자, 그리고 오쟁이를 짊어지고 뒷전에서 함께 재담을 하는 깨끼꾼과 함께 놀이판을 펼친다.
먼저 깨끼꾼이 허튼타령에 맞추어서 춤을 추다가 뒷전꾼인 의딩이가 당을 한바퀴 돌고 들어와서 깨끼꾼과 마주서서 춤을 추다가 서로 부둥켜안고 힘 겨루기를 하는 시늉을 내다가 서로 재담을 주고받는다. 이때는 의딩이가 [날몰라타령]등을 부르게 되며 중모리, 중중모리, 잦은모리 등에 맞추어서 판패개제 소리로 갖은소리를 한다.
삼현에 맞추어서 춤을 추다가 활을 쏘고 나서 [정업이]라고 하는 허수아비를 갖고 갖은 수비, 영산 등을 풀어서 수부를 막고 나면 정업이를 매로 때리는 집장가를 부르고 나서 재담을 하면서 정업이를 들고 나가 들 밖에 나가서 불을 사르고 도당굿을 마친다.
<자료출처 경기도당굿 보존회 http://www.dodang98.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