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위 이하 계급에서 육군장 처음 거행 -
정찬민 용인시장은 8일 오전 8시 30분 분당 서울대병원 영안실에서 거행된 용인 거주(수지구 죽전2동 벽산타운) 태극무공훈장 수상 고(故) 이명수 중위 영결식에 참석, 조의를 표했다.
정찬민 시장은 평소에도 영안실을 직접 찾아 조문하는 등 국가를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 등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예우를 해 왔다.
사병(士兵) 최초로 대한민국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이명수(88) 중위는 지난 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을 장의위원장으로 영결식을 열고 같은 날 오후 1시 30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봉안식을 가졌다.
중위 이하 계급에서 육군장이 거행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으로, 6·25전쟁 당시 故이명수 중위의 전공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육군은 2011년 10월 육군장 대상 규정을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중 전사자'에서 '태극무공훈장 수훈자'로 개정해 낮은 계급에서도 큰 공을 세워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이들을 예우하고 있다.
고인은 1946년 10월 병(兵)으로 자원입대해 1950년 6·25전쟁 발발 수개월 전에 제대했다. 이후 전쟁이 발발하자 재소집 되어 '일등상사'로 임용됐고 3사단 22연대 3대대 12중대 2소대장 대리로 복무했다.
1950년 7월 28일 영덕지구 전투에서 특공대장에 임명되어 대원 12명과 함께 목숨을 걸고 적진에 침투해 육탄으로 적 전차 3대를 격파하는 전공을 세워 '탱크잡이의 명수'로 불렸다.
이후 다시 적진에 침투해 작전 도중 적에게 생포된 부하 3명을 모두 구출해냈다. 이처럼 고인과 특공대원들의 결사전을 통해 적의 포항 진출을 2주일 이상 지연시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1951년 7월 26일 사병 최초로, 군인에게 가장 영예로운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았다. 육군 3사단에서는 고인을 부대혼 정신의 상징적인 인물로 기리고 있다. 이후 1954년 장교로 지원해 육군 소위로 임관했으며 제6군단 수송중대장을 역임하고 1963년 전상의 후유증으로 중위로 전역했다.